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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생활

현대 리더십의 상징인 어니스트 섀클턴에 대해 Araboja.

by Sallyyyy 2021. 8. 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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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상 가장 위대한 사람 대보라 하면
뭐 다양한 분야에서 대단한 사람들이 나올것 같은데

카이사르,소크라테스,플라톤,유클리드,뉴턴 뭐 기타 등등..

근데 리더십이라는
단어 자체가 되게 솔선수범이랄까??
뭔가 이래저래 달성하기 힘든 목표같음

왜냐면 일단 리더십이라는거 자체가
다른 위인들처럼 본인주장이 아니라
타인들이 인정하는거지

그리고 그 인정을 받는 기준이 상당히 애매모호 한
단어가 리더십이기 때문이라 생각함
(징기즈칸이 통솔력이 좋다고
리더십을 좋다고 할수있냐?)

그럼에도 불구하고 많은 사람들이 이 사람이 역사상
가장 리더십의 상징이다! 라는데 이견이 없을 정도로
현대 리더십의 상징과도 같은 존재가 있는데

바로 영국의 어니스트 헨리 섀클턴임


한국에서는 잘 알려져있지 않은 인물인데

아문센 vs 스콧 초기 제국시대 땅따먹기 대결에
디스커버리호를 탄
스콧팀원정대의 멤버중 한명이였음

이때는 일개 선원으로 참여하지만

6년뒤 남극 탐험대를 이번에는 직접 꾸려
인듀어런스 호를 타고 남극 원정에 참여함
어디선가 많이 들어본 이름이지 않음?

인터스텔라에 나온 우주선의 이름이 인듀어런스호

이 인듀어런스호의 작명이 어니스트 섀클턴에게서
나왔기 때문임

출발


아문센 vs 스콧의 싸움에서 아문센의 승리로 끝난 이후

섀클턴 단독으로 1914년 인듀어런스 호
남극탐험 원정대가 출발함

세계 1차대전이 터진 시기라 출발을 못할줄 알았는데 당시 영국 수상이던 윈스턴 처칠이
걍 출발 하라고 해서

우여곡절 끝에 탐험대를 꾸려 출발하게 됨

선원 구함 위험한 여정, 적은 수입,극심한 추위 ,완전한어둠,끊임없는 위험 /                              안전하게 돌아온다 장담못함 / 성공 시 명예와 유명세         (실제 당시 구인공고)


조난


선원은 총 28명이였고(인원 수 중요함)
69마리의 댕댕이가 승선한 인듀어런스 호는

출발하자마자 남극의 해빙속에서 조난되어
무려 9개월을 남극해에서 표류하게 됨

배 주변에 유빙이 얼면서
완전하게 배가 얼어붙게 되었는데

그래도 당시 섀클턴 원정대가
표류하던 곳들이 비교적 남극에서 온순한곳이라

바닷표범,펭귄도 많아서 식량걱정이 없었음

선원들은 어떻게든 플랫 섬으로 가고 싶어했으나
유빙이 심하게 얼어있어 얼음을 가로질러
플랫섬으로 가는데에 실패함

그렇게 시간이 지나 봄이되니
배를 떠받치고 있던 얼음들이 녹기 시작하자

배가 부서지기 시작함

결국 섀클턴은 배를 버리고 탈출 하라 명령하고
무게를 줄이기 위해 개인 소지품을
전부 버리라고 명령함

그러면서 자신의 금화와 은시계 소지품을
가장 먼저 바다에 던져버리는것을 보여줌


이후 인듀어런스호는 완전히 가라앉게 됨...

섀클턴 원정대는 플랫섬을 목표로 정하고
조각배 한척을 얼음위에서 끌며
육지에서의 행군을 시작하지만

남극이 암만 대륙이라도 그 위에 새로 얼어 있는
거대한 얼음들은 바다를 떠다니는것이기에

섀클턴 원정대는
아무리 걷고 또 걸어도 빙하가 떠내려가며
목표물에서 오히려 점점 더 멀어지기 시작함

원래 목표로 갈려했던 플랫섬에서
무려 100km나 떨어져 버린

섀클턴 원정대는 결단을 내려야만 하게 되는데


그가 생각한건 다른 섬으로 가자는거였음

이를 위해 섀클턴 원정대는 데려온
69마리의 개를 전부 도살해서 식량을 비축함


이후 날이 풀리며 거대한 유빙들이 녹으며
섀클턴 원정대를 가로막던 얼음들이 전부 떠내려가자

섀클턴 원정대는 3척의 조각배를 가지고
바다로 출발함

상륙

조각배

표류 497일만에 섀클턴 원정대는
엘리펀트 섬에 상륙하게 됨

엘리펀트 섬

근데 문제는 엘리펀트 섬은
아래 사진을 보면 알겠지만..

사람의 손길이라곤 1도 없는
새똥으로 뒤덮힌 척박한 무인도였음

먹을거라곤 바다표범,펭귄,홍차 뿐이였고
연료도 없었으며

섬 전체를 뒤덮은 새똥무더기로 인해
편하게 잘 수 있는곳 조차 없었음

게다가 당시 1800년대 중반은 통신장비도 전무, 이곳은 항로도 아니였기 때문에 구조대가
올 가망도 없던 섬이였음

암만 대항해 시대고
실크로드가 개발되며
세계대전이 일어나던 시대라지만

그것도 인도차이나 항로에서나 그런거지
남미보다 밑인 남극해에 올 배는 없는게 정상이지

섀클턴 원정대는 자신들이 타고온 조각배를 뒤집어
침낭과 옷을 어설프게 엮어 올려 캠프를 만들었음


상륙 5일후 , 섀클턴은 중대 발표를 하는데
자신이 사우스 조지아 섬에 가서
구조대를 불러오겠다 함

그렇게 선장,이등항해사,갑판장,목수,선원
5명이 자원해서 섀클턴과 함께

사우스조지아 섬으로 구조신호를 보내러 감

먼저 조지아섬에 도착하고 나서
엘리펀트 섬에 구조대를 보낼 계획을 짠것

그것도 이 조각배 한척을 타고 전 세계에서
가장 험한 바다인 드레이크 해협을 건너겠다고 한거임

섀클턴의 항로

이들은 무려 1300km를
저 조그마한 조각배를 타고
태풍에 맞서며 앞으로 나아감

이것을 현대 시대로 치면

태풍 경보 오고 있는데
인천 앞바다에서 조각배 한척 타고
오키나와까지 가는거랑 똑같은 거리임

출항하고 나서 계속 파도와 폭풍우와 싸운
섀클턴 원정대는

이윽고 구름이 하늘 사이로 보이자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는데

알고보니 구름이 아니라
파도 끝의 파도가 허옇게 일어선거 ㄷㄷ

이들이 이윽고 마주친건 집보다 큰 파도였음..

실제 드레이크 해협 파도영상


그럼에도 불구하고
출발 16일만에 사우스조지아 섬 서쪽해에 상륙함

저 파도를 조각배 한척으로 뚫은거임

저 파도에서 죽지 않고
어떻게 사우스 조지아섬에 도착함

상륙


근데 신의 운명의 장난이였을까
이들이 상륙한 사우스 조지아 서쪽 하콘만
섬은 당시 한번도 개척되지 않은곳이였음

정확히 서쪽이 개척이 안 된게 아니라
섬의 서쪽에서 동쪽을 가로질러 가는 길이 너무 험해서

당시 시대에는 섬을 횡단을
성공을 한 사람이 아무도 없었음

일단 남극해라 너무 날씨가 추운게 첫번째였을거고
이 사우스 조지아의 산악지대는
남극해에서 고산지대에 속하는

높은 얼음으로 된 긴 산맥으로 이어져있었기 때문임

선원들이 너무 지쳤던 나머지 섀클턴은
선장이던 워슬리와 단 둘이서만
험난한 길을 떠나기로 함

섀클턴 원정대가 밤에 맞이한 육로



이들은 그 맹렬한 추위와 수직절벽이
가득한 33KM의 직선거리를 올랐고

섀클턴은 같이 간 대원들이
저체온증으로 잠들어 사망하지 않도록 계속 깨웠음

이윽고 한계에 다다르자 섀클턴은 2천미터에 이르는 높은 얼음산을 썰매로 내려가기로 하고

워슬리가 미쳤다고 거부하자 여기서
더 버티는것이 위험하다며 옷가지로 썰매를 만들게 함

섀클턴이 제일 앞에 타고 내려감

초속 30KM의 속도로 산에서 내려꼽다시피 내려간
원정대는 다행히 무사히 내려오게 되었고

섬의 동쪽 후스빅 항에 도착한 이들은 포경기지로
들어가자 선원들은 그들을 귀신인줄 알았다고 함

내륙지방에서 한번도 사람이
오는것을 본적이 없었기 때문..

이후로 30년뒤에서야 이 섬의 횡단을 성공했는데
그 사람도 산악장비를 풀세트로
갖추고서야 성공했다함

1916년에 섀클턴이 조지아섬을 횡단했는데
1924년에 조지말로리가 에베레스트를 올랐으니
그 시절 장비로도 히말라야 간신히 올라갔는데

사우스 조지아는 1940년대에서야 정복했음
거의 뭐 히말라야 맨몸으로 오른거나 다름없는거지

농담이 아니라 히말라야가 8천미터여도
출발을 5천미터에서 하기 때문에

산 자체는 3천미터짜릴 오르는거임

근데 이 조지아섬 산맥의 높이가 2천미터짜리니..
히말라야 7천미터급 오른거랑 비슷한거임

그런 기적과도 같은 생환에서

섀클턴이 처음으로 사람을 보자마자 물어본 말은

전쟁은 끝났습니까?
였다고 함

그도 그럴것이 섀클턴 원정대가
표류한 기간은 거의 2년에 가까웠기 때문

1차 세계대전은 이후로 2년이 더
지나고서야 끝나게 된다


포경기지에서 식사를 마치자마자 배 한척을 빌려서
섬 서쪽에 남아있던 세사람을 데리러 갔고
결국 섀클턴 원정대는 구조되게 됨


엘리펀트 섬


섀클턴 선발대가 1년에 가까운 시간동안
고생을 하며 뛰어다니고 있을때

섬에 남은 22명은 바다표범과 펭귄고기로 연명했음

식량을 육포로 만들어서 장기 보관도 계속 시도했지만
해풍이 워낙에 습하고 변덕이라 고기가
금방 다 상해버렸음

그나마 해변의 조개와 해초류를 먹어서 연명했고
먹다 남은 뼈를 땅에서 파내서 끓여서 먹을정도로
극한의 상황이였다고 함

선원들은 보트를 뒤집어서 캠프를 만들었고
위에 굴뚝까지 만들어서 달았음

또 동상환자의 발가락을 잘라내는 수술도 함

당시 엘리펀트섬 캠프의 대장인 프랭크와일드는
섀클턴이 꼭 구하러 올거라는 믿음을 가지고

매일매일 날씨가 좋을때마다
짐을 싸놓으라고 연습을 시킴

그래서 나중에 섀클턴이 왔을때
아주 빠른속도로 섬에서 짐을 챙겨 나갈수 있었고

엘리펀트섬에 섀클턴 원정대의
모든 필름이 같이 있었기에

우리가 이렇게 200년전
사건의 사진을 볼 수 있게 되었음

영국 본토로 돌아오자마 섀클턴이 한 일은 엘리펀트
섬에 남아있는 선원 22명을 구해야 했기 때문에

구조선을 바로 수배함
그러나 세계 1차 대전 중간이였고

남반구가 이 시기에 겨울이라
유빙이 얼어있어 1차 선발대가 침몰했으며

2,3차까지 도전하지만 전부 실패하여

결국 칠레정부에서 증기선 한척을 빌리게 되고

엘리펀트 섬에 당도하는데에만
4개월이라는 시간이 걸리게 됨


섀클턴이 무사하냐 묻자
"전원 무사합니다!"

정말 단 한명도 사고없이 28명을
3년에 가까운 극한의 상황에서의
조난 상황에서 살려낸것


어니스트 섀클턴


닉값을 제대로 한 섀클턴의 리더십은

보스와 리더의 차이가 무엇인가? 라는것에
강한 바로미터를 제시했는데

리더십의 가장 큰 덕목은 솔선수범이라는
현대 리더십의 초기 개념을 보여준게
바로 섀클턴이였음


1. 처음에 개인 짐을 버려야 할때
자신의 시계,금화 같은 귀중품부터
바다에 던지는것을 보여줌

2. 초기 조난시에 제비뽑기로 침낭을 뽑을때
일반 대원들에게 좋은 침낭을 사기를 쳐서 주고
자신은 나쁜 침낭을 뽑아서 썼다고 함

3. 탐험에 챙겨간
브리태니커 백과사전을 매우 아꼈는데
불쏘시개로 전부 사용함

4. 선원중 기상학자 한명인
허시는 벤조를 가지고 승선했는데
인듀어런스 호가 침몰할때
어쩔수없이 악기를 버려야 했음

멕시코 기타 벤조

근데 섀클턴이 그 악기만은 주워서 전해주었고
이 악기는 선원들의 사기에
매우 큰 도움이 되었다고 함


여담



1. 꽤 유명한 블렌디드 위스키중에 섀클턴이라는
위스키는

어니스트 섀클턴이 남극에 가져갔던
1900년대 위스키의 레시피를 부활시킨것임

1900년대 중반에 부활시키려 했는데
당시 금주법 때문에 제조법이 유실되었고

이후에 2000년대에 되어서야
화이트 앤 맥케이 사가 남극까지 직접가서

섀클턴 원정대가 묻어놓고 온
위스키 상자에서 위스키를 발굴해내고

레시피를 부활시켜서 재 출시하게 됨



2. 우리에게도 잘 알려진 아문센은
섀클턴을 입이 침이 마르게 칭찬했었음

당시 대 식민지 시대여서
유럽의 열강들이 앞다투어 새로운 땅을 탐험할때

노르웨이와 영국의 구도였는데
영국인 로버트 스콧과 노르웨이인
아문센의 사이는 그리 좋지 못했음

나라간 감정도 별로 좋지 못했고

그럼에도 불구

섀클턴은 평소에도 아문센을 극찬했고

아문센도 자신이 만약 같은 상황이였으면
절대 살아돌아오지 못했을거라고 말함



3. 엄홍길은 섀클턴의 수기를 읽고
칸첸중가 등정에 도움을 받았다고 함


4. 섀클턴은 이후에 다시 또 남극탐험대를
꾸려서 탐험에 나섰는데

사우스 조지아에서 과로로 쓰러져 죽었다
그의 나이 향년 47세



3줄요약

1. 어니스트 섀클턴이라는
영국인이 조난됐는데

2. 3년동안 29명 전원생존시켜서 돌아옴

3. 이후 현대 리더십의 상징이 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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